필경사 바틀비 : 월스트리트 이야기
◆ 이 책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월가의 한 법률 사무소를 배경으로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필경사 바틀비의 삶을 통해 자본주의가 낳은 비인간적 사회 구조를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다. 계급 없는 평등 사회라는 이상과 달리 현실 세계는 폐쇄적인 계급 사회일 뿐이며, 화자는 고용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고용주로, 자본가 계급의 권익을 옹호하고 그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필경사 바틀비는 이런 사회의 희생자이며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행하는 노동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고 비참하게 만든다는 작가의 현실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화자인 주인공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고당한 후, 옛 사무실에서 머물다 부랑자로 교도소에 갇혀 음식을 거부하며 죽은 바틀비의 삶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작가의 의식이 반영된 듯하다. 이런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는 19세기 중반 미국 자본주의 사회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지만, 21세기 현재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소설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이야기이지만 익살스러운 대화 문체가 돋보이며 등장인물 각각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
◆ 과학이 발달하고 인공 지능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21세기에도 인간이 행하는 노동의 가치는 19세기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존재하며 노동의 종류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평가되고 대접이 달라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대립이 커지면서 노동자가 노동자를 비판하고 폄훼하고 헐뜯는다. 세상은 무한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반대로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있다.
인간은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와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최저 생계비를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저소득층에게는 엄청난 사치처럼 여겨진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적인 모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노동에 예속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인간은 여전히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 그런 점에서 바틀비의 이야기는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없으며, 노동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